보드 자판의 각 키(key)를 구성하는 네모난 조각을 키캡(keycaps)이라고 한다. 키보드에서 겉에 드러나는 부분이기 때문에, 키캡의 디자인에 따라 키보드의 인상은 크게 변하게 된다. 또한 재질과 디자인, 두께 등의 요소 때문에 키캡에 따라 타건감 역시 달라지게 된다. 키보드의 개성을 결정 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구형(spherical;SPH;球形) 키캡은 1980년대 초반까지 주류였던 디자인으로, 키캡 상단부가 마치 구체(球體) 형태으로 파여진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상단이 실린더 모양으로 파여졌거나 평평한 요즈음의 키캡들과는 달리, 둥글고 말랑말랑한 친근감이 특징이다. 복고적인 디자인이 21세기 책상 위에서 묘한 존재감을 주기도 한다.


셉은 1987년 Honeywell-Bull社에서 출시한 DPS 7000 메인프레임 컴퓨터 터미널에 사용된 키보드이다. Deskthority에서  ROUND 5 공동제작 추진하는 것을 보자마자 바로 올라타야한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완전히 내 취향을 저격당한 느낌이었다.


Deskthority의 공제는 유니크한 기획과 엄청나게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시간이 엄청나게 오래 걸린다는 단점도 있다. 내 경우엔 2013년 10월에 입금한 것이 2015년 8월에야 도착했다. 기본 1년, 최장 2년까지 바라보는 인내에 자신이 없다면 지나치는게 정신건강에 좋다. 대신 받았을 때의 기쁨이란..


열은 KBT Pure Pro를 사용하였다. 베스트셀러인 Poker와 같은 케이스를 공유하며, 풀사이즈 키보드 대비 60% 크기로 간결한 느낌이다. Poker나 Pure와는 달리, Funtion 키와 조합하지 않고도 바로 방향키를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가장 하단의 문자열이 좌측으로 1/3키만큼 이동하였고, 스페이스바가 짧아졌으며, 우측 Shift와 Backspace 등 여러 키가 작아지는 등, 표준 키배열에서 적지 않은 변화가 있다. 가히 변태 배열이라고 불릴만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림에 없는 키들은 Function 키와 조합하여 입력이 가능하다.


독일 ZF Electronics社Cherry MX 스위치를 사용한 키보드이다. 박스도 안 뜯은 신품 상태에서 바로 모닝공방으로 보내, 장인의 꼼꼼한 손길로 다시 다듬었다. 크톡 103+205 윤활, 60g 스위치로 교체, 유격 방지용 스티커 작업, 스테빌라이저 윤활 등등.. 덕분에 지난 2년 동안 정말 즐거운 기분으로 타이핑할 수 있었다.


색, 빨강, 회색은 구형 키캡(spherical keycaps)인 ROUND 5 SPH 키캡ㅡSA 프로파일ㅡ이고, 검정색은 비교를 위한 마제스터치식 실린더 키캡(cylinder keycaps)이다. 실린더 키캡과 비교해 구형 키캡 쪽이 뭔가 동글동글한 느낌이 강하다.

구형 키캡은 1980년대 초반까지 주류였던 디자인으로, 키캡 상단부가 마치 구체(球體) 형태으로 파여진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이후로는 키캡 상단부가 원통 형태로 파인 듯한 실린더 키캡이 깔끔한 모양 때문에 대세가 되었다. 최근에는 아예 더 깔끔함을 추구하기 위해 애플 맥북처럼 키캡 상단부를 아예 평면에 가깝게 만들기도 한다. 

아예 터치스크린의 키보드에 타이핑하는게 더 익숙한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2015년형 맥북의 키 스트로크가 극단적으로 얕아진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오히려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이런 구형 키캡으로 기계식 스위치 키보드를 치는 것에 더 의미가 있는지도 모른다.


SPH 키캡 쪽이 확실히 높이가 높다. 검정 키캡들은 흔히 말하는 "마제" 키캡들로 체리 표준키캡들보다 높은 녀석들이지만, SPH와는 비교가 안된다. 높이가 높은 만큼 시각적인 존재감이 상당하다. 스텝스컬쳐 역시 체리 혹은 마제 키캡들과 다르기 때문에, 적응이 될 때 까지는 즐거운 이질감을 선사해준다.


Signature Plastics에서 제작하는 다른 SPH 키캡들과 마찬가지로, 레고(Lego)와 같은 재질인 ABS 플라스틱이 사용되었다. 각인은 이중사출로 되어 있는데, 이 방식은 키캡이 완전히 파손되지 않는 이상 문자가 지워지는 일은 없다. 키캡의 두께 역시 상당히 두툼함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인지 순정 키캡보다 도각도각거리는 느낌이 강해졌다. 순정 키캡도 정말 느낌 좋은 물건이다.


키캡 표면은 맨들한 느낌이다. ABS 재질의 특성 상 사용하면 좀 더 반질해질텐데, 내 경우엔 물건을 사용하며 늘어나는 사용감을 즐기는 타입이라 맘에 드는 부분이다. 까끌한 느낌을 선호한다면 다른 재질의 키캡으로 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미니키보드라는 특성 상, 다른 키와 결합하여 자주 사용하는 Function 키는 점 모양의 돌기가 있는 키캡을 사용하였다. 

전반적으로 무채색 계열로 깔끔한 느낌을 강조하려 하였고, 좌측의 빨강 ESCAPE 키와 우측의 파랑 RETURN 키가 단조로움을 다소 누그러뜨려준다. 방향 키는 검정으로 다른 키들과 구분되도록 하였다.


이스는 "플라포커"라는 이름의 커스텀 알루미늄 하우징이다. 키보드매니아라는 커뮤니티에서 공동제작한 물건이다. KBT 순정 플라스틱 케이스와 느낌이 가장 비슷한 메탈 하우징이어서 좋아 한다. 다만 모서리가 둥글게 처리되어, 일부 각진 키캡들과 간섭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다행히도 SPH 키캡과 간섭은 없었다.


줄곧 직장에서 써왔지만 독립된 방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평균적인 직장 환경을 감안하여 소음에 대해 코멘트하기가 힘들다. 어쨌든 흑축이라 그리 시끄럽지는 않다. 집에서는 요란한 클릭음의 청축 키보드로 실컷 타건한다.


쩌면 우리들은 손글씨로 뭔가를 쓰는 것보다 키보드로 입력하는 것이 더 익숙한 세대인지도 모른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키보드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필기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몇백원이면 저렴하고 우수한 품질의 볼펜을 구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아직도 고급 볼펜이나 만년필을 쓰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키보드 역시 자기 취향을 투사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게 자연스럽다.

생각해보면, 부모님을 졸라 장만한 컴퓨터에는 키를 누를 대마다 철컹거리는 소리가 나던 세진(Sejin) 키보드가 달려 있었다. 당시는 멤브레인 키보드가 대중화되기 전이라 키보드는 기계식으로 제작되었고, 묵직하고 비싼 물건이었다. 지금이야 소모품으로 개념이 변했지만 말이다.

어쩌면 나는 그때 추억놀이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쉽게 이해는 가지 않지만, 만년필을 고집하는 어르신이 이런 느낌일까 싶다.

by ryan | 2015/08/17 04:06 | 線 - HOBBY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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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BaronSamdi at 2015/08/17 13:01
정말 너무너무 예쁩니다. 부럽습니다. 저도 기계식을 쓰긴 하는데 잘 모르고 산거라 오타가 많이 나서 좀 불편하더군요.
Commented by ryan at 2015/08/17 23:13
저도 처음에는 다른 느낌 때문에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적응되면 정말 좋죠.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페이토 at 2015/08/17 13:43
멋진 키보드네요.

"방향키 있는 미니키보드"가 별로 없는데, 이 제품? 작품?은 있군요!

저도 그러한 제약을 극복하고자 레오폴드 660M을 사용중인데, 만족스럽게 잘 쓰고 있어요.

다만 제 기준에서는 백스페이스가 조금 작다는 느낌은 있네요^^; 인서트는 어떻게 처리되었나요?
Commented by ryan at 2015/08/17 23:15
안녕하세요? 백스페이스도 작고, 인서트는 function키와 i를 같이 누릅니다. 아무래도 미니키보드라 적응기간이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나녹 at 2015/08/17 13:07
저는 실린더키캡을 4년째 쓰고있는데 구형은 정말 여러가지로 디자인이 다르네요. 색조합도 예쁘고, 2년은 길지만 그래도 보람이 있으시겠어요.
Commented by ryan at 2015/08/17 23:16
디자인이 정말 다릅니다. 레트로하고 말랑말랑한게.. (흐미)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탐미주의 at 2015/08/17 13:15
노트북이 익숙해지면서부터 노트북의 야트막한 키보드만 치다 이런 키보드가 그리웠는데 대리만족하고 갑니다. 치는 맛이 있는 물건이겠어요.
Commented by ryan at 2015/08/17 23:18
감성적으로 만족도가 상당합니다. 저도 회사 놋북에 연결해서 쓰는데, 미니키보드가 공간 활용 면에서는 편리한 부분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아빠늑대 at 2015/08/17 22:16
전 정전식으로 오고나서 뭔가 다른 키캡을 쓸 기회가 많이 사라졌네요. 타이핑 하는 느낌은 좋은데... 이렇게 보기만 할 수 밖에 없네요
Commented by ryan at 2015/08/17 23:19
요새 대륙에서 나오는 정전식 키보드는 체리MX용 키캡을 쓸 수 있는 경우가 많더군요.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채널 2nd™ at 2015/08/18 23:49
당연히 좋은(!) 키보드는 좋은 만년필에 필적합니다. <-- 평범한 키보드는 보통 차, 하지만 제대로 된 키보드는 ㅋㅋㅋ 페라리 저리 가라입니다. ((내 손에 맞는 키보드가 최고입니다.))

그나 저나 저 키보드 이미지에 따르면 -- 오른쪽 -- SHIFT나 CTRL 키가 너무 작아 보이는데 ... 적응은 어땠는지요..?? ((해피 해킹 쓰고 있는데 .. 아직 적응이 잘 안되어 약간 '불편'합니다. ㅎㅎ)) ;;;
Commented by ryan at 2015/08/20 02:25
공감합니다. 오른쪽 shift와 ctrl이 작은데, 쓰다보니 다 적응이 되더군요. 나중에는 독특한 즐거움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키보드로 치다 일반 키보드로 쳐도 전혀 위화감이 없구요. 해피해킹 키보드시라면 키감도 그렇고 배열도 독특해서 타이핑이 정말 즐거우시겠어요. ^^
Commented by 가릉빈가 at 2015/10/17 11:17
예전에 허니웰 키보드가 있었죠 ㅎㅎㅎ

이제는 안보이길레 망한줄 알았는데 그냥 PC 시장에서 빠지고 산업용으로 갔나 보더군요

집앞에 허니웰 회사가 있더라는 ㄷㄷㄷ
Commented at 2017/07/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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