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이 끝났다. 스키장 리프트 기계실 건물의 하얗게 덮인 처마로 똑똑 떨어지던 눈 녹는 물방울을 보면서도 난 겨울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어쨌든 보드 시즌이 끝나지 않았다면 봄은 오지 않은거니까. 하지만 어느새 3월 세번째 주말. 이제 정말로 겨울은 끝나버렸다. 올해는 반갑지 않은 해외출장으로 무려 4주나 손해보기는 했지만, 국내에서 보딩을 즐길 수 있는 정말이지 사랑스러운 계절인 겨울이 끝나버린 것이다.

내 경우엔 보딩을 할 수 있다면 다른건 그다지 상관없는 것 같다. 직장에서 후배가 기어오르거나 과장에게 말도 안되는 대우를 받더라도, 카빙의 엣지날 소리 몇 번이면 그런 사소한 스트레스는 날아가버리게 마련이니까. 여자도 필요없다. 여자라면 크리스마스 일 주일 전에 헤어졌다. 신나는 하루 끝에 로맨틱한 저녁식사와 특급호텔에서의 하룻밤까지 예약한 순간, 갑자기 커플들의 상당수가 빠져나가 다소 한적해질 것 같은 슬로프에서 보드를 타는 편이 더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인간관계의 중심도 강원도로 급격히 이동해버린다. 그런 마당에 블로그가 눈에 들어올리가 없지.

어쨌든 내 의사와 상관없이 겨울은 끝나버렸고, 마침 오늘은 오프인 금요일이었다. 난 겨우내 관심에서 완전히 밀려나 있었던 자전거를 꺼내 차 트렁크에 싣고 한강으로 나가 클릿페달에 적응도 할겸 잠실에서 여의도까지 달려보았다. 한동안 유산소 능력이 퇴화했음을 뼈져리게 실감하며. 그래도 긴박하게 지나가는 경치와 기분 좋은 아드레날린의 펌핑, 은근한 경쟁, 이 모든 것들을 만끽할 수 있는 자전거란 역시 즐거운 취미임에는 틀림 없다. 아쉽게도 보드만큼 재밋는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에서 보드란,
말하자면 겨울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 제철음식과 같은 것이다. 봄, 여름, 가을에도 먹을 수 있다면 당연히 더 행복하겠지만, 그때그때 먹는 순간의 즐거움은 줄어들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순간순간 기대가 되고 소중할 수 밖에 없다. 그걸 알기에 나는 이번 겨울이 끝나기도 전부터 다음 겨울을 기다렸던 것이다. 유학 중인 여자친구와의 연애도 이보다 애절하지는 않았다. 그녀와는 달리 시간만 견뎌내면 돌아온다는 확신이 있는데도 말이다.

by ryan | 2008/03/22 00:48 | 點 - PRIVATE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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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파파울프 at 2008/03/22 16:46
저같은 사람은 언제나 보고 그리워 할 뿐 정작 몸을 움직여 보지는 못했네요. 언제 쯤 선망이 실현으로 변할지...
Commented by ryan at 2008/03/24 17:37
이쪽으로 오세요.. 경치가 바뀝니다.. ^ㅅ^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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