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APEC 정상회의 기간에 감행되었던 농업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농민시위를 계기로 폭력시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가열되고 있다. 농민 한 명이 시위중 사망했으며, 이로인해 허준호 당시 경찰청장은 '언제까지 국가정책 때문에 빚어진 사회적 갈등을 경찰만이 길거리에서 온몸으로 막아내고 그 책임까지 짊어져야 하는 안타까운 관행이 반드시 끝나기를 소원한다'는 말을 남기며 눈물의 퇴임식을 치뤘다. 한 경찰이 자신의 제모를 청와대에 반납하는 해프닝이 있었고, 폭력시위에 공감하지 못하는 다수 시민들은 다양한 공간에서 농민시위대에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오늘은 올블에서 농민폭력시위를 비판한 '한국의 폭력시위와 문제점'이 알찬글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글을 읽기 전에 꼭 먼저 읽어보기를 권한다.) 포스팅을 하신 '시적정의'님의 결론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폭력'이라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그것의 주체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어떠한 대의명분을 가지고 저질렀느냐는 검토할 대상이 아니다'라는 것인데, 전체적인 방향에는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논리에 있어서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있어 트랙백 포스트를 작성해본다.

문은 다음과 같은 딜레마에서 시작되었다. 시적정의님의 결론을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에게 적용할 경우엔 어떻게 되는가? 이는 분명 당시 '의거'가 있었던 만주국의ㅡ인정할 수 없다면 중국의ㅡ실정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을텐데 말이다. 물론 안중근 의사는 독립을 주장하는 조선인이며, 때문에 속인주의에 따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당시 열강들이 악용했던 속인주의를 비판할 명분이 사라지게 됨은 물론 단순히 '법의 테두리'라는 결론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논리의 비약이 되어버린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유사한 행위를 했을때 처벌할 논리적 정당성이 훼손되는 부작용도 생각해볼 수 있다.

부모나 선생이 아이를 체벌하는 것 역시 폭력이다. 하지만, 이는 법률뿐만 아니라 체벌이 이뤄지는 곳의 문화적·역사적 맥락이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정당할 수도 있고 부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암울했던 시절, 민주화를 위해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들었던 것도 폭력이다. 자유의 과실을 향유하는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이는 정당한 '투쟁'이었겠지만, 당하는 독재세력들에게는 폭력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어쨌든 헌법정신에는 합치하지만 법률위반인건 사실이다. 위헌판단은 헌법재판소의 권한이 아니던가. 공산주의국가인 북한에서 자행되는 반인권적인 폭력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유엔에 동시가입도 하고 정상회담까지 한 마당에 사문화된 헌법조항을 들어 '북한은 우리의 영토이며 괴뢰정권의 법률 따위 인정할 수 없다'고 우길텐가?

폭력을 수단으로 이뤄지는 국가와 국가간의 고도의 정치행위인 '전쟁'의 경우엔 위와 같은 딜레마를 더욱 크게 만들어버린다. 아군을 사살한 적군포로에 대한 처벌은 있어도 규정에 따라 적을 사살한 아군에 대한 처벌은 없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는 전시엔 각자의 법에 따라 훈장을 주고 국제법에 따라 포로를 대우하면 되고 그 후의 처리 역시 국제법에 따라 승전국이 결정하게 되는데, 이 정치적인 동시에 법률적인 처리가 정당하지 않을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승전국의 학살행위는 은폐되거나 묵인되기도 하고, 패전국의 처리에서 인권을 유린하는 폭력이 자행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정당성에 기초하지 않고 단지 승전국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법률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한편, 안중근 의사는 자신을 '만국공법'에 따라 포로로 대우해줄 것을 요구했었는데, 이 역시 현실적인 문제점들이 많다. 당시나 지금이나 국제사회를 지배하는 권력기구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 집행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법은 기본적으로 조약을 통해 관습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당사자가 아닌 경우에는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강대국 중심의 각종 국제회의에서 철저히 무시당했던 임시정부의 일원이었던 그의 요구가 깔끔히 묵살당한 이유이기도 하다.

위에서 보듯 법률적 판단이 항상 이성적 판단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보편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이를 기준으로 삼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문제는 '폭력'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인 용어라는 것이다. 폭력이 문제화되는 경우엔 대개 '부당한 폭력'의 경우였기 때문에 폭력이라는 용어 자체가 마치 가치판단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인식되곤 하지만, 폭력은 폭력일 뿐이다. 국어사전의 '폭력'에 대한 정의는 '난폭한 힘. 육체적 손상을 가져오고, 정신적·심리적 압박을 주는 물리적 강제력.'이라고 쓰여 있을 뿐, 윤리적인 판단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치판단을 위해선 '정당한 폭력' 혹은 '부당한 폭력'과 같은 개념의 추가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어찌됐건 어떤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렇다면, 어떻게 폭력이 정당하거나 부당하다는 것을 판단해야 하는가. 위와 같은 딜레마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런 고민을 바탕으로 '폭력의 3원칙'을 작성해보았다.

1. 폭력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 권리의 구제가 불가능해야 한다.
2. 1에 위배되지 않는 경우에 한해, 동기·대상·방식·강도에 있어 '과잉금지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3. 1과 2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폭력행위의 주체는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센스 있는 블로거들은 위의 원칙들이 ' 로봇 3원칙 '을 참고했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역시 아시모프는 천재다.. 오마주라고 하자, 오마주..) 위의 3원칙에 따라 이번 APEC 시위에 대한 가치판단을 시도해보자.

은 농민들이 밀려오는 세계화의 물결로 당장 내일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회에는 자신들을 대변하는 세력이 거의 없다고 항변하며 폭력시위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들은 이런 상황까지 오기 전에 다른 방법으로 자신들의 권리ㅡ생존권ㅡ을 스스로 구제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전농의 폭력시위마다 '전국의 600만 농민의 생존권을~'이라는 구호는 단골처럼 나오곤 한다. 하지만, 그 농민들은 선거때만 되면 수은처럼 증발해버리고 만다.

주요정당 중에서 가장 농민의 이해를 정책적으로 대변하는 민노당 소속의 후보가 농촌지역에서 당선된다는 것은 꿈에 가까운게 현실이다. 농민 비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자신의 이해보다는 지역주의에 따르는 투표행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전라도의 농민들은 민주당 혹은 열린우리당을 찍고, 경상도의 농민들은 한나라당을 찍는다. 이번 쌀 수입의 와중에 단식투쟁이란 평화적 수단으로 농민과 함께했던 국회의원은 민노당의 비례대표 의원인 강기갑이 유일하다. 하지만, 다음 총선에서 농민들은 과연 몇이나 민노당 국회의원들을 만들어줄까. 만약 민노당이 의석의 1/3이라도 차지했다면, 아니 농촌지역에서 몇 석만이라도 더 나와서 원내교섭이라도 가능했었다면 이렇게 폭력시위가 난무할 필요가 있었을까.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에, WTO체제 출범 이후에 선거가 몇번이나 치러졌는가? 그 긴 시간 내내 자신의 생존보다 더 중요했던 지역주의에 자신의 권리를 기꺼이 바친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권리는 없다. 스스로 입을 틀어막고 말을 할 수 없다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사람을 보고 우리는 '미친놈'이라고 부른다. 무슨 염치로 '대의명분'을 들먹거리나? 1번 원칙의 명백한 위반이다.

한편, '무기평등의 원칙'이라는게 있다. 견제와 균형을 위해 대립하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압도하는 것을 막기 위한 원칙이다. (예를 들어 우리 노동법은 우세적인 자본에 노동이 일방적으로 착취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동 3권'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 3권에서 가장 강력한 권리인 '파업권'에 자본이 휘둘리는 것 역시 막기 위해 '직장폐쇄'라는 권리 역시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시위대와 진압대에도 이 원칙이 적용된다. 폭력적인 진압에 맞서 시위대는 자위수단을 강구할 권리가 있으며, 전경은 폭력시위에 자신을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폭력시위나 진압은 각각 사적폭력과 공적폭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 양쪽에 평화적 질서이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본적인 무장 자체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장 자체가 과잉금지의 원칙을 어겼다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잉금지의 원칙에 비추어 APEC 기간에 있었던 시위대와 전경의 충돌에 대한 평가는 어때야 할까. 뉴스 화면을 보고 나는 농민들의 폭력이 2번 원칙을 명백히 위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방패로 막으며 소극적으로 경찰봉을 휘두르는 전경들과, 무장한채 돌격모드로 달려들며 겁에 질린 전경들이 올라가있는 컨테이너마저 무너뜨린 농민들을 비교해보면, 그들이 적당한 선을 지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주류가 편집한 뉴스 화면 따위를 보지 말고 우리의 자료를 보라고? 불필요하게 폭력적인 진압이 동원되는 영상자료는 신물나게 봐왔다. 하지만, 지금은 APEC 시위를 논하는 자리이다. 예전에 당했으니 갚는다는 유치한 발상이라면 그만뒀으면 좋겠다. 내가 보기에 법에 호소하기 힘들만큼 우리의 사법시스템에서 시민단체나 농민단체는 약자가 아니다.

시위 중 한명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있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농민들은 자기 자신을 잘 보호했다고 평가한다. 공격측이 수비를 뚫으려면 통상 3배의 병력이 필요하다는 군사학의 상식에 비추어보면 농민의 희생이 한 명에 그쳤다는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니까.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이미 1번과 2번 원칙에 위배되었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폭력의 당사자는 1번과 2번의 원칙에 위배되는 상황에서는 폭력을 통해 자신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이 3번의 취지이니 말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1번과 2번 원칙을 위반함으로써 농민들은 자신들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장의 설득력을 스스로 떨어뜨린 것이다.

APEC의 경우에 직접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3번째 원칙의 또 다른 취지는 인명중시이다. 그 의도가 무엇이었든간에 자신의 생명을 버려서는 안된다. 분신시위 하지 말라. 3원칙의 위배다. 단식은 좋지만 하다 죽을 정도는 절대 안된다. 시위는 홍보와 설득의 수단이어야지 협박의 수단이 되면 안된다. 크레인에서 뛰어내리거나 조사 도중 화장실에서 목매지도 말라.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끝까지 살아서 자신의 주장을 당당히 관철하는게 진짜 용기다. 삶을 포기한 주장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시위든 투쟁이든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해야 한다. 타인과의 연대도 자신의 이해가 기반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죽으면 끝이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신나게 이용만 당할 뿐이다.

반면, 경찰의 대응은 전반적으로 '폭력의 3원칙'을 준수했다고 생각한다. 경찰은 입법기관이 아니라 행정기관이다. 더구나 그들에게 사태를 이 지경까지 만든 국회의원들을 '임명'할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허 전경찰청장의 외침이 설득력을 가지는 부분이다. (그는 경찰 출신으로 문제의 본질에 제대로 접근했던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의 퇴임과 관련된 이후 경찰 내부의 반응을 보며 '아전인수'라는 말이 떠올랐던 것과는 달리.) 무장한채 전진하는 시위대 앞에서 물리적인 진압 이외에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이 뭐가 있었을까? 또, 무기평등의 법칙에 비춰봤을 때 그들의 무장은 오히려 시위대보다 열악했다. 농민들의 쇠파이프나 죽창에 비해 경찰봉의 길이는 항상 짧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컨테이너로 저지선을 쌓는 등 최대한 물리적 충돌을 피하려는 노력마저 기울였다. 또한 방패와 적당한 보호구를 갖추며 구성원 보호에도 최선을 다했다고 보여진다. 폭투로 유명했던 일본의 '단카이 세대'가 '헬멧'으로 상징되는걸 보면, 오직 쇠파이프만으로 공격과 방어를 겸하겠다며 맨몸으로 달려드는 우리 시위대의 무모함은 아스트랄할 지경이다.


론 위와 같은 '폭력의 3원칙'은 법률적 판단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법률은 매우 유용한 잣대인 반면 그 한계 역시 명백하다. 사회의 흐름 하나하나를 법률로만 판단하기에 우리는 너무나도 복잡한 맥락의 얽힘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가간의 전쟁은 단순한 맥락에서 판단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 그것이 국내적이든 국제적이든 지금은 점점 사회의 여론이 중요해지는 추세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것이 사적이든 공적이든 어떤 폭력도 사회적 합의에 쌓아 올려진 정당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폭력의 3원칙'이 개인의 판단을 도우며 나름의 기능을 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램이다.

또한 '폭력의 3원칙'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보편성'에 기초해 작성되었을 뿐이다. 문제는 그 '보편성'이 실은 전혀 보편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폭력을 미화하는 공산주의자나 파시스트에게 1번이 무슨 소용일까. 그들은 무조건 사람을 때려잡고 '마땅히 죽었어야 했다'고 말한다. 2번도 소용없다. 신을 위해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 아랍 테러리스트에게 3번 원칙은 이해할 수 없는 딴지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명존중이나 기본권 따위의 가치들을 '보편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들이 인류의 진보에 유익한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을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깨닫고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바램이 담긴 용어랄까.. 때문에 이런 기본적 가치에 반대해 딴지를 건다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법률' 역시 '폭력의 3원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법이 실효성이 있는 것은 그 집행을 강제하는 국가의 공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공권력이 현실적으로 뒷받침되는 것은 국가가 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 보유하고 있는 집단인 경찰과 군대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국가는 농민들을 폭력으로 진압하지 않아도 되기 위해 그들의 권리 행사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공권력의 진압이 과잉하지 않도록 통제하며, 앞의 원칙들이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국가체제를 보호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농민시위대에게는 유감스럽겠지만, 내 판단으로 국가는 위의 3원칙을 모두 지켰다고 생각한다.

부록으로 9.11 테러에 '폭력의 3원칙'을 적용해보자. 개인의 신념과 가치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생각에 그들은 1원칙은 지켰으며, 2원칙은 위반, 3원칙도 위반이라고 생각한다. 1번에 있어 그들은 얼어붙은 만주에서 누더기를 입고 일제에 항전했던 우리 선조들과 다를바가 없다. 하지만, 민항기를 납치해 민간건물을 공격한 것은 변명할 수 없는 잘못이다.  이봉창 의사나 안중근 의사는 일제의 심장부만을ㅡ'천황' 행렬이라든지 조선총독이라든지ㅡ 타격하는 센스를 발휘하셨다. 자폭테러도 그렇다. 두 의사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까지 끝까지 살아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진정한 용기를 발휘하셨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빈라덴은 부시와 동급의 찌질이일 뿐이라는거지. 이라크전에서의 미국은 농민시위대와 같다. 절대 대안없는 양비론이 아니다. 3원칙이 있다.

by ryan | 2006/01/31 18:39 | 面 - SOCIETY | 트랙백(1) | 덧글(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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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하늘이무너져도정의를세워라 at 2006/02/01 12:15

제목 : 한국의 폭력시위와 그 문제점
△ 폭력적인 것들! 지난번 농민대회는 우리에게 폭력시위의 무서움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그로부터 이어지는 경찰수뇌부의 사퇴, 전의경의 명찰 착용검토 등 다양한 사건들로부터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그 근원적인 문제점의 사고를 검토해보는 글이 되었으면 한다. 각설하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폭력시위는 사라져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가의 물리력을 통해서라도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우선 상대방의 사고를 검토해보자. '폭력'은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사회적 구조의 폭력'앞에 무방비하게 생......more

Commented by 시적정의 at 2006/01/31 19:37
잘 읽었습니다.

뒤의 3원칙 다음의 내용은 제 글과는 큰 연관성은 없는거 같고 앞부분은 개진해주신 의견에 대해서 조금 생각해보자면,

천하의 링컨대통령도 civil war에서는 극악무도한 폭력은 상관없다고 하기도 했듯이, 전시일 경우에는 도덕 및 법률 구속의 범위를 넘어가버립니다. 오히려 과도한 폭력이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는 역설적인 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군의 베트남에서의 과잉폭력을 생각해볼 수 있죠. 아무튼 전쟁을 논의범위하에 두는 것은 문제와는 상관이 없을듯 합니다. 전쟁을 하면서 전후처리까지 계산하며 싸우는 것이 아니니까요. 또한 국제법이라는 것은 형체가 흐릿한 것입니다. 무시하면 그만입니다. 국가적 이익을 목도했을때는 현실주의적 입장에서 국제규칙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법의 테두리를 강조한 것은 국내의 상황이지 그것을 국제상황에 적용하거나 전후처리 등에 적용할 수 없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시적정의 at 2006/01/31 19:37
또한 안중근 의사 및 기타 의사들은 한국인의 감정적인 부분도 작용하고 또한 그들이 '대한민국 민간인'으로서 '대한민국 민간인'에게 폭력을 사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논의전개에 있어서 과다한 배경이 필요해서 생략하겠습니다. 저는 현재 대한민국의 테두리에서 '폭력시위'에 관련해서 글을 쓴 것이지 그것을 일제강점하나 어떠한 특수한 상황하에서 지금과는 다른 환경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제 글에서 국제적인 가정을 하며 설명을 하였지만 이것은 본문에도 나와있듯이 '상황이 맞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쉬운 이해를 위해서 사용한 것입니다. 실제의 분석은 다소 복잡할 수 있습니다. 그 범위를 전쟁, 국제적인 갈등에까지 가져간다면 분석의 기준과 틀이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국제정치'와 '정치'가 다름이 그 첫째 이유가 될 것입니다.

다소 짧게 쓰느라 덧글의 내용들이 이해가 어려우실 수도 있는데, 제가 쓴 글은 대한민국하에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려는 이익집단들의 시위 행태를 논한 것이지 그것을 역사적으로나, 국제적으로까지 끌고 들어갈 생각은 저에게는 없습니다.
Commented by ryan at 2006/01/31 19:42
시적정의// 트랙백 허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국제법에 대해선 제 요지와 같으시고, 링컨의 예는 과도한 폭력이 오히려 인명의 희생을 줄인다면 그건 과잉금지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거겠지요. 국제적인 언급은 딜레마의 여러 예에 불과할뿐 본문을 보면 민주화에 관해서도 나와 있습니다. 물론 제가 논의를 무리해서 확장한 측면도 있지만, 시적정의님께서 트랙백하신 다른 분의 의경관련글과 시적정의님의 글에 9.11 테러의 예가 나와있었기 때문에 다른 경우도 있다는 취지로 올린 것입니다. 기본적인 방향에는 십분 공감하지만, 그런 예와는 달리 결론에 있어 국내에 한정한다는 조건이 없었기 때문에 여러 오해의 소지가 있었거든요. 기본적으로 반론이 아니라 비판적 찬성과 보강 정도의 취지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ㅅ^
Commented at 2006/01/31 20:5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ryan at 2006/01/31 21:44
하하.. 그런가요.. ^ㅅ^;;;;;;
Commented by 살살 at 2006/02/01 09:59
911때 공격(테러가 아니라 공격이라고 표현하고 싶군요)당한건 민간건물만 있는것도 아니고, ira에 의해 폭사당한 어린이도 한두명이 아니지요. 여튼 저부분은 워낙 복잡민감한 부분이라 저는 생각만 해도 골아프군요.

ps. 베트남에서의 한국군 만행에 대해서는 말이 자주나오던데.. 과도한 폭력을 잘 사용한것은 월맹이었지 한국군 혹은 미군이 아니었죠. 낮에 미군이 얼라들에게 예방접종한 부락에 밤에 들이닥쳐서 접종한 얼라들 팔을 다 잘라버린 월맹군은 어떤 케이스에 넣어야할려나? 참고로 월남전기간중 미군의 오폭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추정을 5만명정도로 보고 있슴다. 그런데 전쟁기간중(전후가 아닙) 베트콩과 월맹군에게 의한 학살, 보복, 테러로 희생된 민간인은 대략 40만명정도로 추산되지요.
Commented by ryan at 2006/02/01 10:17
9.11 테러때 민간건물'만' 공격했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펜타곤 등을 함께 공격했다고 민간건물을 붕괴시킨 의미가 달라지는건 아니죠. 어쨌든 펜타곤도 민항기로 들이받은거고.. IRA야 말씀하신건 사실입니다만, 다만 그때만해도 테러리즘의 양상이 지금과는 달랐다는거죠. 물론 같은 기독교인 혹은 백인끼리였다는 차이점도 있겠습니다만, 지금의 아랍테러리스트와는 분명 다르긴 했죠. 한편 시적정의님과 살살님께서 베트남을 언급하셨는데, 유영철이 21명을 죽였다고 5명을 죽인 사람이 '별로 안죽인게' 되는건 아니겠죠. 개인적으로 폭력은 둘의 비교보단 각자의 행동을 평가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평가가 모두 일치할 수는 없겠죠. ^ㅅ^a
Commented at 2006/02/01 13:3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ryan at 2006/02/01 13:41
exdes// 테스트해봤는데 안먹네요. ^ㅅ^a
Commented by exdes at 2006/02/01 17:06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 그나저나 말 (馬) 조심 하세요 무하하
Commented at 2006/02/01 17:1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새치마녀 at 2006/02/01 19:48
농민 시위에 대해서 과연 폭력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구제가 불가능한 상황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시면서 그 예로 농민들이 농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민주노동당을 외면하고 평소대로 지역감정에 휩싸인 투표성향을 드셨는데 제 생각엔 과연 농민들에게 민주노동당이 충분히 홍보가 된 상황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아무래도 민주노동당은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처럼 자주 언론에 나오진 않거든요. 그리고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는 젊은층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농촌에 계신 분들의 상당수가 나이드신 분들인데 이 분들이 어느날 불쑥 나타난 신생정당에 선뜻 표를 주기는 어렵거든요. 자신이 지지하지 않았던 정당의 후보가 내세우는 정책이 마음에 든다 할 지라도 망설이다가 결국 전에 지지하던 정당에 표를 주는게 나이드신 분들의 심리니까요. 더구나 '노동당'이라는 명칭이 북한을 연상시켜 오해하기도 쉽구요.
Commented by ryan at 2006/02/01 20:25
exdes// ever heard of COLLATERAL damage? i hate the words.. 조심하죠.. ^ㅅ^a
블로진// 저야 영광이죠. 이메일 보내겠습니다.
새치마녀// 구체적인 적용에 있어서는 개인마다 판단이 다를 수도 있겠죠. 그래도 2번은 걸리겠지만.. 농민분들도 다른 의미에선 왜곡된 정치문화의 피해자라는 의견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라는 법언도 있죠.. 제 외가도 농촌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Commented at 2006/02/02 13:3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로리 at 2006/02/02 15:12
1. IRA는 예고장을 잘 보내지 않았습니다.

2. 일본 거주지에 대한 테러나 동양 척식회사나 시청에 대한 테러는 과연 민간인에 대한 테러일까요? 국가에 대한 테러일까요?

Commented by ryan at 2006/02/02 15:26
exdes// 맞아. 하하
로리// 1. 그렇군요.. 제가 잘못 알았나보네요. 수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 _)
2. 일본인 거주지에 대한 테러는 민간인에 대한 테러겠죠. 지금 평양에 융단폭격을 하면 누가 더 많이 죽을까요? 반면 동척이나 시청의 경우엔 보기에 따라 다를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동척과 시청에 대한 테러는 '민간인'에 대한 테러로 보는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대일본국'에 대한 테러겠죠. 사족이지만, 9.11테러의 경우에 제대로된 타겟은 펜타곤 뿐이었구요. 하지만, 개인마다 더 엄격히 혹은 관대하게 적용한다고 해도 할말은 없습니다. 제 제안은 대원칙일 뿐이지 그 후는 개인의 영역이니까요. ^ㅅ^a
Commented by 살살 at 2006/02/02 18:10
글쎄요? 911은 분명히 83년도 베이루트 해병대사령부 폭탄테러같은 류와는 좀 다른관점으로 봐야하지않나 싶은데말이지요. 이미 어설프게 미국을 건드리면 자국만 시체바다된다는걸 93년도 소말리아(이동네도 역시나 회교로서 회교원리주의자들과도 당연히 관계되어있지요)에서도 여실히 증명했고. 돈없고 힘없고 땅없는 팔레스타인에서나 어린이들이 이스라엘 탱크에 돌던지다가 총맞아죽지요 :)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인거같아서 조금 가슴아프긴 합니다 :)
Commented by ryan at 2006/02/02 18:43
개인마다 관점이 다르겠죠. 솔직히 전 이슬람 테러에 심정적으로 동정하는 입장입니다. 항상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지도자들이 암살당하는 국제 국내 정치에 신물도 나구요. 학살자를 총리로 뽑은 하누카쓴 미친 유대인들도 혐오합니다. 사람 사는데 장벽 둘러치고 그 밖에서 농담따먹으며 포격하고 미사일 쏘고 있을 이스라엘군도 증오합니다. 남의 땅 들어가서 '자기 땅'을 지키겠다며 총들고 설치는 유대인 전통복장의 정착민도 돌로 쳐 죽이고 싶습니다. 아버지에게 달려가다가 머리에 총맞고 즉사하는 팔레스타인 아이를 보는 것보다 더 분노를 자극하는건 밤에 자다가 집의 흙벽을 뚫고 총알이 들어와도 어느새 익숙해져서 다시 잔다는 한 어린아이의 증언을 들었을 때였죠. 어쩌면 아우슈비츠보다 팔레스타인이 더 지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Commented by ryan at 2006/02/02 18:46
하지만, 그게 민간건물을 붕괴시켜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민간인 수천명을 묻어버리는 행위를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9.11 테러는 미국에서의 여론을 악화시켜 극우화시키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죠. (가끔 빈라덴과 부시 사이에 서로 밀어주기로 했나..라는 망상까지 들 지경이죠.) 결국 알카에다의 집단광기를 위한 거대한 '스너프 필름'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그걸 보면서 그들은 계속 자위나 하겠죠. 신의 뜻이 어쩌구 하면서..
Commented by ryan at 2006/02/02 18:46
간디는 사실 평화주의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아실겁니다. 그가 비폭력저항운동을 선동한건 그게 전략적으로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아마 간디라면 무장투쟁을 했더라도 쓸데없는 민간인 학살은 피했을겁니다. 그리고 꼭 해야 한다면 학살도 했겠죠. 누굴 죽였는지 안 죽였는지보다 더 중요한게 그거라고 생각합니다. 피할 수 있는 희생이었냐.. COLLATERAL DAMAGE라며 이해하고 넘어가주기엔 지나치게, 정말 지나치게 과잉이었습니다.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비판은 양자에게 모두 적용되어야겠죠. 일제때 독립투사들의 목표가 '조국과 민족의 자유와 독립'이 아니라 '언젠가 일본을 점령해 이 치욕을 갚으리라'였다면 얼마나 웃겼겠습니까. '위안부' 할머니들을 변호하면서 '언젠가 이 치욕을 일본년들에게 되갚아주어야 한다'라면 누가 동조하겠습니까.
Commented by 써머즈 at 2006/02/03 02:24
부록 읽고 "만약 911 테러의 범인들이 폭발 전 이미 탈출했었다면?" 이라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정말 했는데, 아무도 모르는 건 아닐까요? 당시 워낙 경황들이 없었던 틈을 타 가능할 것도 같은데 말이죠. 뭐, 그냥 그랬다는 겁니다. @.@
Commented by 살살 at 2006/02/03 10:15
뭐 간단히 짚어볼려고 해도 중동전, 7년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하는지라 그냥 pass할렵니다. (자료가 어디 처박혀있는지도 모르겠고 -_-a)

여튼 뉴튼의 제3법칙이라면 모를까 "3원칙이 있다"는 부분은 전혀 동의하기 힘들군요.
Commented by ryan at 2006/02/03 15:50
하하.. 뭐, 그래서 저도 테러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살살님께서 저보다 더 많이 알고 계실거긴 합니다. 저야 워낙 박학한 타입이어서.. ^ㅅ^;;
그리고 3원칙은 원칙(principle)이지 법칙(law)이 아니니 너그럽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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