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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혼인(婚姻) [명사][하다형 자동사]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 곧 남녀가 부부가 되는 일. 결혼. 혼취(婚娶). 과연 일부일처제(monogamy)는 종말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혼인을 종교의 절대가치 중 하나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헛소리에 불과하겠지만, 인류역사의 맥락을 더듬어보면 혼인제도는 경제의 토대 위에 건설된 사회제도의 부산물 중에 하나라고 보는 편이 맞는 것 같다. 지난 수천년간 인류는 지구상의 모든 종(種) 들 중에서 가장 눈부신 성취를 이루어 왔으며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경제와 사회제도를 발전시켜왔다. 혼인제도 역시 사회변화에 발맞추어 자연스럽게 변화해왔는데, 각 문화마다 다양하고 예외적인 양태를 보이지만 일반적으로 원시공동체 사회의 일처다부제, 중세의 일부다처제를 거쳐 근대 이후에 일부일처제가 보편화되었던 것이 그것이다. 우리가 별 의문없이 받아들이는 일부일처제가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친 근대서구사회에서 신흥지배계급으로 떠오른 부르주아지들의 취향과 필요에 의한 것이었는데, 전통적인 농업사회에서 분업화된 산업사회로 넘어가면서 가족집단의 단위도 필연적으로 분절화되게 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혼인제도를 통한 사회경제의 효율성 제고가 절실하였던 것이다. 이를 위해 일부일처제는 이전보다 더욱 강화되는 경향을 띄게 되었고 때마침 낭만적 연애사조가 유행하게 되었던 것도 이를 문화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통해 이룩된 가족제도의 안정성은 '아빠'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엄마'는 저렴한 비용으로 가사를 전담하는 매우 효율적인 경제단위를 가능하게 하였고, 이는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하지만, 모두가 비교적 동질적인 문화와 동기에 이끌려 앞으로만 줄달음치던 근현대시대가 지나가고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후기현대사회로 접어든 지금, 이러한 일부일처제의 유용성은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혼인율을 매년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반면, 이혼율은 47.4%로 OECD 국가 중 미국(51%)과 스웨덴(48%)에 이어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우리보다 이혼이 쉽다는 노르웨이, 영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보다 더 높은 수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혼에 이르지 않은 가정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많은 부부들이 배우자 이외의 애인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서로 들키지 않게 조심만 하면 문제삼지 않겠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조리 속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경제적 비효율은 얼마나 클 것인가.. 외견상 일부일처제는 위기 속에서도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내용상으로는 종말에 이르렀다고 단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이 와 레즈비언, 즉 동성애자들의 혼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 이렇게 장황하게 결혼제도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많은 이들이 동성결혼이라는 뜨거운 이슈를 대함에 있어 현재의 일부일처제를 인류가 성취한 절대적인 가치로 가정하고 이를 사회적 소수자인 동성애자들에게도 허락하는 관용을 베풀지 말지의 문제로 인식하는 오류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반면, 일부일처제든 다처다부제든 결혼제도에 우열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사회적 필요와 적합성의 문제로 바라보며,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인류문명의 발전ㅡ닭살돋게 거창하군.. 쩝..ㅡ이라는 것이 나의 인식이다. 아주 잘 만들어진 효율적인 기계처럼 돌아가던 근현대사회와는 달리 후기산업사회에서는 남녀의 실질적인 평등이나 복지제도의 정비, 눈부신 매체의 발달로 인한 풍요로운 다양성 등, 인류의 진보를 위한 새로운 가치들이 재발견되었고 이는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 인류의 사회 경제적 관계의 양태를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사회제도의 부산물에 불과한 혼인제도도 이런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데, 독신가정 동거가정 동성가정 등의 새로운 가족형태가 '대안가족'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으로 완고한 일부일처제라는 전통적인 혼인가치에 도전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가족제도에 대한 요구는 어느날 갑자기 괴이한 사람들의 머리 속에 갑작스레 떠오른 기발하고 불쾌한 발상이 아니다. 우리 자신의 선호가 유선전화에서 핸드폰으로, 편지에서 이메일로, 인쇄매체에서 인터넷으로 옮겨갔을때부터 시작된 사회 경제 제도의 변화에 따른 필연인 것이다. 물론 과도기이기 때문에 전시대의 관념에 젖어있는 이들에게는 매우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운 변화겠지만, 속된 말로 '2만불' 아니 '3,4만불'시대를 달성하기 위해 필수적인 사회적인 효율성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사회제도의 진보일 뿐이다. 예를 들어 많은 이들이 게이들을 비난할 때 그들의 성적인 난잡함을 지적하는데 이는 사실 맞는 말이다. 게이들은 이성애자들에 비해 평생 파트너를 훨씬 자주 바꾼다는 것이 통계로도 나와 있으니까. 하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는 다른 시각이 공존한다. '게이 새퀴들은 원래 더러운 새퀴들이라 그래'라는 비이성적인 시각과 '결혼제도나 동성파트너의 미비 등 하나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데 필요한 사회문화적인 지원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이성적인 시각이. 그들에게는 혼인이라는 거창한 법률제도는 고사하고 무슨무슨 데이처럼 이성애자들이 관계를 공고하기 위해 감행하는 유치한 의식들도 숨어숨어 눈치보며 해야하는 환경에 처해 있는 것이다. 혼인관계라는 것은 다른 한편 경제적인 결합관계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들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예를 들면 40년 이상 동거한 레즈비언 커플 중 하나가 죽었다고 해보자. 40년 이상 둘의 재산은 물론 공동으로 축적해온 것이고 당연히 생존한 파트너는 사망한 파트너의 재산에 대해 권리가 있어야 하겠지만, 남녀간의 법률혼만 인정하는 현행법 하에서는 그녀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집에서 내쫒고 30년간 의절한 가족이 나타나 유산에 대한 모든 권리를 행사해도 억울함을 호소할 방법이 없다. 이는 동성애자들만의 문제가 아닌데, 법률혼이 아닌 사실혼에 해당하는 동거커플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열심히 일해 돈을 모은다는 자본주의의 핵심원리, 즉 노동윤리와 자본축적의 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인데, 이전에는 사회구성원들이 비교적 동질적인 가치를 공유해왔기 때문에 혼인제도를 획일화하고 안정화함으로써 얻는 사회적 효용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컸었고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사회는 이전보다 훨씬 다양해졌고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욱 다양하게 분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낡은 혼인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구한말 상투를 자르면 부모와 조상에 큰 죄를 짓는 거라며 죽음보다 두려워했던 꽉 막힌 유생과 뭐가 다를까.. 동성결혼이라는 자극적인 소재에 가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대상이 독신가정과 동거가정, 무자녀가정인데, 동성커플만은 아니더라도 이들 역시 구시대 자본주의의 낡고 완고한 관습에 고통받는 존재이다. 명절 때면 '결혼 안하니' '애는 안낳을거니?' 등의 질문에 시달리느라 친척들만 봐도 어지럽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실은 웃어넘길만한게 아니다. 꼭 이게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사회적인 비용이라서가 아니라 이런 불필요한 제약들이 개인의 행복을 엄청나게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이미 전통적인 혼인제도를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유럽이나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동성결혼을 합법화했으며, 프랑스나 북유럽 국가의 상당수는 사회연대 또는 시민연대 등의 형식으로 동거혼을 보장하고 있다. 또한 충실한 복지제도와 개방된 태도로 싱글대디나 싱글맘들과 그 자녀들에 대한 차별도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 중 주목할만한 것은 1999년에 입법된 프랑스의 시민사회연대협약(PACS)인데, 커플이 이 법의 적용을 신청하면 결혼한 커플과 마찬가지로 세금도 합산되어 과세되고 의료보험 등에서도 가족단위의 혜택이 주어지며 아이의 교육에 있어서도 차별을 받지 않는다. 또한 일방이 사망할 경우에도 생존한 커플이나 자녀가 결혼가정의 경우에 준하여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제도가 실질적으로 결혼제도와 다른 점은 일방이 끝낼때 이혼같은 번거로운 절차를 거칠 필요없이 법률적으로 끝내겠다는 의사를 통보하면 그만이라는 점과 동성이든 이성이든 상관이 없다는 것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동거커플이 확산되면 가뜩이나 낮은 출산율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하는데, 나는 오히려 지금처럼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결혼에 모든 것을 걸게 되어 있는 지금보다 저런 대안들이 존재할 경우 혼인한 커플들이 2세를 가지려 할 때 느끼는 리스크가 줄어들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을 때의 두 사람이 '끝'까지 함께 할거란 보장이 없는 지금, 오히려 혼자 또는 다른 사람과 아이를 키우는데 적대적인 환경이 출산율 저하의 근본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편모·편부 가정의 육아에 대한 사회환경이 우호적인 서구의 높은 출산율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생각해보라..) 또 동성커플의 경우에도, 아동수출국이라는 불명예스런 딱지가 붙어있는 지금 상황에서 이러한 제도의 보완으로 그들의 아동입양이 가능해진다면 국가적으로나 아동의 복지에 있어서나 나쁠게 없다고 생각한다. 한편, 개인적으로 일부 동성애자들이 '결혼' 그 자체에 집착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입장인데, 위에서 언급했듯 전통적인 결혼제도는 남녀간의 경제사회관계를 규정할 필요에 따라 나름의 역사적 맥락을 거쳐 탄생한 제도적 산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형태로 그들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도 안될 것은 없겠지만 법적인 결혼이 종교적·사회적 결혼과 깊숙히 통합되어 있는 서구의 경우와 달리 사실상 분리된 우리의 현실에서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한국에선 결혼이 사회적으로는 결혼식, 혈족으로는 폐백, 법률적으로는 혼인신고로 분리되어 있다. 시청 등에서 성직자가 법률문서를 앞에 두고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서구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꼭 모든 차원이 같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의 인식도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보통이다.) 오히려 위와 같은 시민연대협약을 통한다면 이미 존재하는 동성결혼에 대한 사회 일반의 만만치 않은 반감을 우회할 수 있는 동시에 제도적인 측면에서 이해가 일치하는 이성동거커플 등과 같은 소수자들과 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사회·문화·역사적인 맥락을 봐도 우리와 같은 경우에 꼭 당장 법률적인 동성결혼을 주장하며 역량을 소모하는 것이 전략적으로나 실리적으로 좋은 선택인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사회적인 협상전략이라면 할 말이 없다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취향이나 현실적인 이유로 획일적인 혼인제도을 선호하지 않는 소수자들이여, 성적취향을 뛰어넘어 연대하라! # by | 2006/01/05 19:53 | 面 - SOCIETY | 트랙백 | 핑백(1) | 덧글(2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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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비슷한 주제로 고민을 해 본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남한사회에서 동성결혼이라는 것은 말씀하신 '사회적인 협상전략'으로서 유효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민사회연대협약같은 제도에 대한 '사회 일반의 만만치 않은 반감'은 동성결혼에 못지 않을 것 같거든요. 다양한 방식으로 획일적인 혼인제도에 저항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게 같은 해에 결혼한 부부의 이혼률이냐 아니면 한해 총 이혼 건수를 따른 것이냐가 중요한 문제인데 예로 드신 각 나라의 이혼률이 어떤 기준을 따랐는지 궁금하네요.
또 하나 궁금한 것은 글에 언급되어 있지 않은 출산률 통계입니다. (어째 딴지거는 투가 되어버렸네요. 죄송합니다. ^ ^;)
동거혼의 경우엔, 저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일정기간이면 자동으로 인정되는 식은 영미법이라면 가능할지 몰라도 코드가 중요한 대륙법에선 신고제가 불가피해보여요. 어차피 일방이 깨면 그만이라면 신고제라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건 아니겠죠. 법제도와 문화적 환경 등을 고려해볼때 프랑스의 PACS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ㅅ^
우리 법이 대륙법계이니 역시 대륙법계인 프랑스 쪽이 참고할 부분이 많겠군요.
그러고보니 생각나는 일인데 3년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할머니가 40년간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중 남편이 몰래 다른 여자와 법률혼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를 뒤늦게 안 할머니가 소송을 했으나 사실혼보다는 법률혼(사실혼 관계가 시간상으론 먼저였음에도)을 우선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안타깝지만 구제해드릴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는군요.
만약 프랑스처럼 동거혼 제도가 나올 경우엔 이런 피해사례가 없어질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다만 법률혼이 유명무실해진다는 문제는 있겠지만 법률혼이든 동거이든 간에 먼저 관계를 맺은 사람을 확실히 정리해야만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니까 양다리족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순기능은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봅니다.
다음 기사가 바로 그 문제의 기사입니다.
40년간 동거하며 부부로 살았더라도 동거남에게 이미 혼인신고를 한 다른 여자가 있다면 동거를 지속한 두 사람을 ‘사실혼 관계’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22부(김이수롤暖b?부장판사)는 24일 A씨(65렛?가 “40년 가까이 동거했다면 사실혼 관계로 봐야 한다”며 남편 B씨(80)를 상대로 낸 사실혼 파기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심대로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동거생활을 할 때 당사자 중 한 사람이라도 혼인할 의사가 없으면 실제로 부부처럼 생활했다 해도 사실혼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B씨도 혼인할 것을 전제로 동거를 시작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실혼 관계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A씨는 1965년 B씨를 만나 동거를 시작해 B씨 본가를 오가며 시부모를 봉양했고 제사에도 참석했으며 B씨도 A씨의 부모를 모시고 사는 등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해왔다. 그러다 B씨가 71년 다른 여자를 만나 혼인신고를 하고 둘 사이에 아이까지 낳은 사실을 1996년 뒤늦게 안 A씨는 지난해 4월 B씨를 혼인빙자간음으로 검찰에 고소하는 한편 법원에 사실혼 파기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그러나 고소는 공소권이 없다는 검찰의 판단에 따라 불기소 처분됐고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1심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동아일보 2003-09-24 23:11:00
저도 저 할머니 뉴스를 본 기억이 납니다. 찾아보면 유사한 경우도 꽤나 많죠. 그런데 우리 법 체계상 PACS와 같은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할머니가 구제되기는 힘들겁니다. PACS도 신고가 필요하니까 말이죠.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구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정당화될겁니다. 하지만, 위계에 의해 혼인신고가 되었다는 가능성이 있다면 당연히 수사와 재판이 이뤄져야 할텐데, 또 엄격한 형사에선 힘들더라도 민사에선 구제받을 수 있어야 할텐데, 사법개혁이 이뤄지기 전엔 힘든 문제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미국내 반대론자들의 대응은 무리가 있습니다. 동성애 자체를 인정하냐 마느냐를 떠나서 조선시대의 시방지처럼 애초에 남녀 생식기를 모두 갖고 태어난 사람의 경우를 염두에 두지않았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거죠.(혹시 여성지에서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고두심씨의 춤선생이었던 문 아무개씨도 남녀 생식기를 모두 갖고 태어난 케이스입니다. 처음엔 아들로 키워졌지만 이상한 아저씨에 의해 납치당해 강제로 수술을 당한 후 여성으로 살아왔다고 하는군요.)
물론 이런 경우 성염색체를 보고 어느쪽을 선택할 지를 결정하여 수술을 한 후 나중에 반대 쪽 성의 배우자를 택하면 간단히 해결 될 수도 있겠지만, 성 염색체 자체가 일반인들과 다른 경우라면 또 골치아픈 문제가 생기겠죠. 염색체 자체를 바꾸는 수술이 있는 건 아닐테니까요.
sex(생물학적 성)보다 gender(사회학적 성)가 중요한 시대가 오기 전의 과도기 같습니다. 언젠가 제가 자식을 낳아 녀석이 20대가 된다면 세상은 엄청나게 바뀌어 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