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히 우리 지역구는 어렸을 때부터 특정 정당의 아성이 워낙 공고한 곳이라 투표할 맛도 별로 안나는 곳이지만ㅡ스포일링 당한 영화관람처럼ㅡ비례대표라도 하나 건지는데 일조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투표하기로 마음 먹었다. 대운하도 맘에 안들지만, 그것보다는 국민건강보험 체계가 더 문제인 것 같다. 어쨌든 지역의 봉건영주나 지배자를 뽑는 날이 아니라 자신의 대표자를 뽑는 날이라는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해서, 비가 미친듯 오더라도 첨벙거리며 빗줄기를 뚫고 투표하러 갈 것이다. 저녁엔 친구와 한강의 맑게 개인 하늘 아래서ㅡ혹은 한강 다리 밑에서ㅡ와인이나 마셔야지.

by ryan | 2008/04/07 23:23 | 面 - SOCIETY | 트랙백 | 덧글(3)


 

울이 끝났다. 스키장 리프트 기계실 건물의 하얗게 덮인 처마로 똑똑 떨어지던 눈 녹는 물방울을 보면서도 난 겨울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어쨌든 보드 시즌이 끝나지 않았다면 봄은 오지 않은거니까. 하지만 어느새 3월 세번째 주말. 이제 정말로 겨울은 끝나버렸다. 올해는 반갑지 않은 해외출장으로 무려 4주나 손해보기는 했지만, 국내에서 보딩을 즐길 수 있는 정말이지 사랑스러운 계절인 겨울이 끝나버린 것이다.

내 경우엔 보딩을 할 수 있다면 다른건 그다지 상관없는 것 같다. 직장에서 후배가 기어오르거나 과장에게 말도 안되는 대우를 받더라도, 카빙의 엣지날 소리 몇 번이면 그런 사소한 스트레스는 날아가버리게 마련이니까. 여자도 필요없다. 여자라면 크리스마스 일 주일 전에 헤어졌다. 신나는 하루 끝에 로맨틱한 저녁식사와 특급호텔에서의 하룻밤까지 예약한 순간, 갑자기 커플들의 상당수가 빠져나가 다소 한적해질 것 같은 슬로프에서 보드를 타는 편이 더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인간관계의 중심도 강원도로 급격히 이동해버린다. 그런 마당에 블로그가 눈에 들어올리가 없지.

어쨌든 내 의사와 상관없이 겨울은 끝나버렸고, 마침 오늘은 오프인 금요일이었다. 난 겨우내 관심에서 완전히 밀려나 있었던 자전거를 꺼내 차 트렁크에 싣고 한강으로 나가 클릿페달에 적응도 할겸 잠실에서 여의도까지 달려보았다. 한동안 유산소 능력이 퇴화했음을 뼈져리게 실감하며. 그래도 긴박하게 지나가는 경치와 기분 좋은 아드레날린의 펌핑, 은근한 경쟁, 이 모든 것들을 만끽할 수 있는 자전거란 역시 즐거운 취미임에는 틀림 없다. 아쉽게도 보드만큼 재밋는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에서 보드란,
말하자면 겨울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 제철음식과 같은 것이다. 봄, 여름, 가을에도 먹을 수 있다면 당연히 더 행복하겠지만, 그때그때 먹는 순간의 즐거움은 줄어들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순간순간 기대가 되고 소중할 수 밖에 없다. 그걸 알기에 나는 이번 겨울이 끝나기도 전부터 다음 겨울을 기다렸던 것이다. 유학 중인 여자친구와의 연애도 이보다 애절하지는 않았다. 그녀와는 달리 시간만 견뎌내면 돌아온다는 확신이 있는데도 말이다.

by ryan | 2008/03/22 00:48 | 點 - PRIVATE | 트랙백 | 덧글(2)


 

중문화를 보면 여자 주인공에게 단짝 게이 친구는 꽤나 흔하게 등장하는데, 남자 주인공의 단짝 레즈비언 여자친구는 단 한번도 못봤다. (있더라도 내 눈에는 띄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예외적인 경우이거나.) 왜일까? 동성애라는 코드 자체가 남성을 적대시하는걸까? 아니면 여성적 우정보다 남성적 우정이 다름을 용납하는 관용이 약해서일까. 누군가는 남성의 성욕ㅡ그런데 이것도 편견이야. 물론 대중문화야말로 편견의 집합물이겠지만ㅡ이 문제가 된다는데, 그래서일까? 것도 아니라면, 남성에게 레즈비언 친구는 별로 매력적이지 못한 대상이고, 그래서 장사에는 좋지 못한 소재여서? Even if it is the case, why is that? 현실은 어떨까? 만약 현실도 그렇다면, 혹은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인거야?

by ryan | 2008/01/29 01:11 | 面 - SOCIETY | 트랙백 | 덧글(14)


 


본에서는 성인식을 각 지자체에서 주관해서 하는 모양이다. 이곳 오키나와에도 며칠 전부터 이를 알리는 현수막이 눈에 띄더니, 일요일이라 별 생각없이 나간 Naha의 Kokusai Street의 가장 큰ㅡ아마도 오키나와 전체에서 가장 클듯한ㅡ사거리 횡단보도가 시끌벅적거리고 있었다. 스무살의 어린ㅡ부러운ㅡ아해들이 일본옷을 입고 신호가 파란 불이 될때마다 양쪽에서 다른 패거리끼리 중앙에서 합류하고는 알 수 없는 일본어로 고함을 지르는 풍경. 그럴 때마다 백화점 앞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들이 서둘러 나와 제지하지만, 물리적 충돌이라거나 그런 분위기는 아니다. 신호가 바뀌면 다시 갈라져서 다음 신호를 기다린다. 뭐, 건전한 청춘이구나~라는 느낌. 설레발치는 남자아이들과 달리 여자애들은 지켜보며 들떠 있는 분위기가 왠지 낯설지만은 않았다.

내 스무살 성년식때는 어땠더라. 기억에 남는건 4학년 대학선배에게 한창 꽂혀 있던 때라, 성년식 자리에서부터 계속 치근덕대던 추억(?). 누님은 웃으며 내게 2000cc 피처를 원샷하여 사랑을 증명할 것을 명령하셨다. 비록 3차 자리였지만 성실히 이행했던가. 거의 '대모'스런 포스를 풍기며 한창 운동하시던 누님께서 졸업 후 평범하게 S이동통신사에 입사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뭔가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순진했구나. 그러고보면 스무살 이후로 야금야금 나이를 먹는다는게 그리 달콤하기만 한 것은 아닌듯 하다. 요새 거울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랄까. 동영상의 녀석들이 앞으로 겪을, 동북아 귀퉁이의 무의미한 변두리에서 지독히도 드라마틱하게 흘러갈 청춘에 행운을 빌며. Life after high school gets better..이라고 피터 페트렐리가 말했는데, 정말이었을까?

by ryan | 2008/01/16 22:40 | 面 - SOCIETY | 트랙백 | 덧글(9)


 

만인의 선택으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민주주의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마도 선거 결과에 대한 승복이라고 했던가. 천만인의 선택이니만큼, 내 새로운 대통령으로, 리더로 인정해야겠지. 대한민국을 향후 5년간 이끌어나갈 대통령의 탄생을 온 국민이 자신이 누구에게 표를 던졌느냐와 상관없이 진심으로 축복하며 의지를 모으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정치의식의 한 단면일테니까.

다만 아쉬운 것은 벌써부터 이 우여곡절 많은 당선자를 수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과반에 가까운 표를 몰아주며 지지했던 국민의 다수, 혹은 그 다수의 지지를 등에 업은 세력이 보여주고 있는 횡포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은 국민이 반에 가깝게ㅡ하지만 절대 과반은 아니지만ㅡ표를 몰아주었으니 특검이든 뭐든 그 효용성을 잃은 것이 아니냐며 특검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란다. 이번 대선은 국가지도자를 뽑는 것이 목적이었지, 대선후보자의 불법행위 의혹에 대한 실체적인 진실을 밝힐지 말지에 대한 국민투표가 아니었던 이상, 그런 판단마저 투표로 결정하겠다는 초법적인 발상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 수가 없지만 말이다.

수의 지지 여부만으로 실체적인 진실도, 이에 따르는 법적인 책임도 결론이 난다는 발상은 파시즘의 부활을 연상하게 한다. 이전 한국사회를 오랜 기간 지배했던 군사정권이 시민사회의 정치적 미성숙을 틈탄 '위로부터의 파시즘'이었다면, 이런 유형의 파시즘은 지독한 정치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속에서 자포자기적인 시민의 무조건적인 지지를 업고 탄생하는 전형적인 '아래로부터의 파시즘'이었으니까. 물론 어느 쪽이든 광범위한 미디어 조작은 필수적이다. 이번 선거를 보면서 괴벨스의 그림자를 느꼈던 것이 나 혼자 뿐이었을까. 진부하게 히틀러나 문화혁명의 이야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다수의 지지는 정권의 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절대 아니다.

당선자 진영은 시민들의 경제에 대한 관심이라는 어젠다를 고수한 것이 결정적인 승인이었다고 분석하는 모양인데, 오히려 당선자의 정책에 대한 관심이나 분석은 오히려 철저하게 실종되었던 것이야말로 '현 정권에 대한 심판'이 이번 선거의 본질이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경멸과 무관심 속에 당선자는 '경제회복'이라는 떡밥을 대중에게 던진다. 그리고는 특권층 취향의 정책을 깨알같이 써놓고는 거대한 폰트의 서민지향의 광고와 구호로 덮어버렸다. 시장은 거짓말을 안한다. 선거기간 동안 네이버 첫 페이지에 번쩍거렸던 '집값를 내리겠다'는 광고와는 무관하게 서울의 부동산 시장은 위로 치고 오를 준비에 분주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과 현실의 괴리는 당선자의 압도적 인기 앞에서는 빛이 바래는 모양이다.

자, 그래서 우익 포퓰리즘, 혹은 신 포퓰리즘 시대가 개막되었다. 정책은 완전히 실종된 상태에서 인기투표처럼 변질된 선거의 결과를 '포퓰리즘'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용어가 있을까. 이번 우익 포퓰리즘 시대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역설적으로 당선자가 그토록 높이 외쳤던 시장중심 자본주의에 가장 위험하고 치명적인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가능한한 작음을 지향하고, 원칙적으로 최대한 시장의 자율기능에 맡기겠다는 시장주의는 그 참가자들이 '룰'을 준수할 것을 엄격하게 요구한다. 아니라면 시장의 순기능은 실종되고 독과점의 횡포와 금권유착, 가혹한 노동현실로 얼룩졌던 참혹한
단순한 정글과 같았던 산업혁명시대의 풍경으로 회귀할테니까. 때문에 미국에서도 정부의 경제개입은 통화정책에 방점을 찍은 상태에서 최소화하며, 대신 시장감시 기능만큼은 강력히 유지하는 것이다.

써부터 일부 지역에서는 '모 후보는 했는데 우린 왜 안되냐'며 위장전입에 항의하는 아줌마들 때문에 위장전입 단속에 애로를 겪어 왔다고 한다. 위장취업과 탈세는 어떻게 단속할 것인가. 국민의 도덕, 혹은 법과 원칙에 대한 냉소주의가 위험수위까지 확산되고 있다. 더 두려운 것은 혹시라도 특검이 아예 원천봉쇄되거나 특검 결과 당선자의 주가조작 혐의가 인정되는 시나리오이다. 이 경우 당선자가 대통령직을 포기하지 않는한, 새 정권의 우익 포퓰리즘적인 성격은 대중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더욱 극단을 향해 치닫게 되기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에 대한 공수표 남발과는 별개로 현실은 반대의 결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반칙왕이 국민경제의 공정한 심판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정권이 '신뢰자산'이 중요한 밑천인 금융업을 '건전하게' 키울 수 있을까? 외국인은 그런 심판이 이끄는 나라를 신뢰할까? 이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심판은 공짜 점심을 원하는 국민들을 만족시켜 줄 수 있을까? 그러지 못했을 경우에, 폭주의 결과는 누가 감당해야만 할까? 아니 애초에, 상황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전반적으로 진정되는 분위기가 되었을 때, 그때도 국민은 당선자가 '최소한 경제ㅡ물론 지표상의 경제가 아니라 부동산 안정과 양극화 해소가 핵심인ㅡ만은 살리겠다는 약속을 지킬 정직한 지도자'라는 믿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반 국민들은 특정 범죄에 대한 혐의가 인정되면 '증거인멸 또는 도주의 우려가 있는 경우' 구속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게 된다. 재임 중 형사상의 소추에서 면제되는 대통령은 분명 도주의 우려는 없겠지만, 막강한 행정권력의 수장의 위치에서 가지게 될 탁월한 증거인멸 능력은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특검이 무력화되고, 진실 규명이 정권 후로 넘어간다면 그때까지, 그리고 그 후의 진흙탕은 상상만으로도 혐오를 불러 일으키게 한다.

정말 복잡하다. 이것이 국가지도자에게는 기업의 CEO나 경영기술자와는 달리, '도덕성'이라는 매우 중요한 덕목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도덕성이 결여된 정치인은 프로페셔널이 아니다. 도덕성 파탄은 국민에게 막대한 '대리인 비용(agent cost)'를 강요하니까. 그것은 최소한의 도덕성을 갖춘 지도자만을 선택하는 나라만이 선진국으로 진입한다는 '결과'가 차갑게 증거하고 있다. 일단 절박했던 '천만인의 국민들'은 도박을 선택한 모양이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사회에 닉슨같은 대통령이 탄생할 가능성의 '실(失)'과 닉슨같은 대통령을 끌어내린 경험이 줄 '득(得)'의 손익계산이 궁금해진다. 일단 특검 결과가 나와봐야겠지만.

by ryan | 2007/12/21 10:42 | 面 - SOCIETY | 트랙백(1) | 덧글(2)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